타인들의 의견 경청

"구차한 변명 거두고 하나님과 세상 앞에 납작 엎드리자" - 박 득 훈 목사

파워님 2008. 7. 3. 10:31


"구차한 변명 거두고 하나님과 세상 앞에 납작 엎드리자"

                                                

                                                   박득훈 목사, "한국 교회 새롭게 일어나길 바라며"

 교회 개혁을 줄기차게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다. 교회 상황은 별로 나아진 바 없는데 같은 소리를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듣는 사람도 지치긴 매한가지다. 피곤이 극에 달하면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대승을 거둔 후에 얼마 안 있어 걷잡을 수 없는 침체에 빠지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지쳐 잠든 엘리아에게 천사를 보내셔서 어루만져 주시고 먹을 것을 내미시는 하나님이 그렇게 고맙고 감사할 수가 없다. 그런가 하면 엘리야가 그랬던 것처럼 마치 자기 혼자만이 외롭게 교회 개혁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절대 고독의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또 다른 형태의 무서운 교만이다.

그래서 그런지 교회 개혁의 길을 걸어가다 보면 종종 주님의 은혜를 절박한 심정으로 붙들게 된다. 한편으론 너무나 힘들고 다른 한편으론 자기 의에 사로잡힌 바리새인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엄습해오기 때문이다. 수년 전부터 기도할 때 늘 빼놓지 않는 제목이 생겼다. ‘주님, 제가 은근히 잘난 척 하면서 감사만 하고 회개할 것이 없었던 바리새인이 되는 순간 저는 끝장입니다. 제발 제가 주님께 나아갈 때마다 세리처럼 통절한 회개의 마음을 품게 하소서.’ 주님께선 이런 기도를 참 기뻐하신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주님은 그런 기도를 응답하셔서 은혜를 새롭게 베풀어 주신다.

“세리의 통절함을 품게 하소서”

며칠 전 MBC에서 열린 ‘100분 토론’에 패널로 참여하게 되었다. 주제는 ‘대형 교회 문제점들과 종교인의 과세 문제’였다. 한편으론 한국 교회와 사회를 향해 하고 싶었던 말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방송에 나가기가 참 싫었다. 우선 그 자리가 몹시 부끄러운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마치 세상이 교회를 향해 ‘좀 잘 해볼 수 없겠니? 그 정도밖에 못하겠니?’ 묻는 자리인 것 같았다.

국민들 앞에 불려나가 그런 질문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이 갑론을박하는 것 자체가 참 슬프게 느껴졌다. 게다가 종교인 과세나 종교법인법 문제에 대하여 내겐 기술적 전문성이 별로 없었다. 피하고 싶은 자리였지만 우여곡절 끝에 출연하게 되었다. 방송국에 도착했는데 그날 밤 따라 찬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따뜻한 건물 안에 들어왔는데도 몸은 계속 떨렸다. 추워서 떠는 건지 마음이 떨리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공적으로 밝히기 어려운 조그만 나만의 공간을 찾았다. 거기서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주님, 저에게 죄와 거짓에 대하여는 예리한 분별력을, 사람에 대하여는 진실한 사랑을, 말할 때는 온유함과 담대함을 주십시오.’ 기도를 마치니 떨림이 없어졌다.

절망 속에 희망이

100분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지나갔다. 중간 중간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하고 싶은 말의 십분의 일도 못한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완벽하게 마음을 잘 다스린 것 같지도 않았다. 이런 저런 아쉬움이 스쳐 지나갔다. 과연 방청객과 시청자들은 어떤 결론을 내릴지 자신이 없었다. 그 후 이런저런 반응에 접하면서 죄송함과 감사함이 교차되었다. 가장 죄송했을 때는 한 달에 겨우 60여만 원을 받아가며 시골의 작은 교회를 섬기시는 한 목사님께서 전화를 걸어 ‘그런 자리에는 왜 나간 거예요?’라며 따질 때였다. ‘보이지 않는 가운데 눈물과 땀을 흘려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는 이들에 대한 존중심을 왜 표현하지 못했을까’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이 자리를 빌려 저의 불찰에 대하여 다시 한 번 깊이 사과하고 싶다.

반면 가장 감사할 때는 한 고등학생과 적지 않은 비기독교인들의 긍정적인 평에 접했을 때였다. 곧 고3 올라간다는 학생은 교회개혁실천연대 게시판에 다음의 글을 남겨 주었다.

“목사님 말씀 중 한국 교회 희망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글을 적으면서 더 생각하게 되었지만 전 일부러 그러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희망이 없다면 그 자리에도 나가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생과 사는 주님이 정하시기에 저는 함부로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의인 한 명이면 소돔과 고모라를 살렸듯이 한국 교회도 아직 눈물과 애통하는 맘으로 기도하는 의인이 있기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눈물이 흘렀다. 내 마음을 이해해주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한국 교회 희망의 새 싹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지 않은 비기독교인들이 기독교 신앙과 교회에 대한 호감과 희망을 새롭게 갖게 되었다고 말할 때 참 기뻤다. 안티 기독교 흐름을 막는 길은 그들을 공격하고 교회를 변호하고 방어하는 데 있지 않다는 점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오히려 우리의 드러난 잘못을 시인하고 통절히 회개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변화의 몸부림을 칠 때, 하나님께선 그들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움직여주실 것이다. 물론 그래도 반대할 이들이 남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더 이상 우리의 치욕이 아니라 영광이다. 진실로 주님 때문에 오해와 핍박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반응을 검토하면서 기독교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나의 마음을 깊이 파고드는 노래가 있었다. 최명자 씨의 ‘나보다 나를’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그 노래를 계속 듣고 있다. 곡조를 전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가사의 일부를 옮겨보고 싶다: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셨네요. / 내 이름 부르시며 십자가 달리셨네요. / 그 은혜 못 이겨 주 앞에 섰으니. / 주 뜻대로 주 위해 살게 하옵소서.’

연약하고 죄 많은 우리를 그리고 한국 교회를 지금도 우리들 자신보다 더 사랑하시는 주님을 생각하니 너무나 은혜가 되었다. 우리 이름 부르시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생각하니 눈물이 한 없이 흐른다. 정말 나부터 시작해서 우리 한국 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 한 분 한 분이 이 은혜 못 이겨 주 앞에 설 수 있게 되길, 그리고 ‘주 뜻대로 주 위해 살게 하옵소서!’ 진실로 기도하며 실천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해진다.

지금은 ‘변명’할 때가 아니라 ‘사죄’할 때다

이제 MBC ‘100분 토론’을 전후해 한국 교회와 관련하여 다시 한 번 내 마음속에 정리된 된 점들을 나누고 싶다. 첫째, 한국 교회는 회개의 시늉을 즉각 중단하고 진정한 회개의 길에 들어서야 한다. 작년 한 해 평양대부흥 100주년을 맞아 대대적으로 회개해 보려 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회개의 시늉만 했기 때문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바란 광야 가데스에서 가나안 땅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보고를 듣고 밤새 울고는 새 지도자를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이에 하나님은 신앙적인 입장을 취했던 갈렙과 여호수아만 제외하고 20세 이상의 성인은 한 사람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하다가 죽을 것이라고 선고한다.

그제야 정신이 버쩍 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했다고 하면서 이제라도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모세는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두 번 불순종하는 것이기에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라고 만류한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고집을 부려 진군하려다 패하고 만다(민 13:26-14:45). 그들은 회개의 시늉만 낸 것이다. 회개의 형식은 갖췄지만 실상은 그들 자신의 장래에 대한 보장을 다시 받아보고 싶었던 것뿐이다.

사울 역시 비슷한 길을 걸어갔다.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욕심에 사로 잡혀 사울은 좋은 짐승과 아각 왕을 살려둔다. 사울은 처음에는 잡아떼다 사무엘의 도전을 받자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해 짐승 중 가장 좋은 것을 남겨두었다고 둘러댄다. 사무엘이 하나님은 제사보다 순종을 원한다고 단호하게 밝히자 그제야 사울은 자신이 범죄하였다고 시인한다.

그러나 그것 역시 회개의 시늉일 뿐이었다. 그의 진정한 관심은 사무엘의 도움을 받아 왕으로서의 신분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하여 그는 사무엘의 옷이 찢어질 정도로 붙들며 자신을 백성들 앞에 높여 자신과 함께 돌아가 하나님께 경배할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한다(삼상 15장).

한국 교회가 작년 한 해 동안 한 일은 바로 이러한 회개의 시늉이었다. 인적·물적 자원을 대대적으로 동원하여 대형 집회들을 열어 큰 소리로 잘못했다고 외쳤다. 그러나 진짜 관심은 회개의 열매를 맺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무너져가는 한국 교회와 목회자들의 위상과 세력을 회복하는 데 있었을 뿐이었다. 투명 경영의 압박과 기득권 박탈에 위협을 느낀 교계 지도자들은 선교의 자유, 사적 재산권 확보라는 미명하에 사학법 재개정을 관철시키기 위해 삭발 투쟁을 불사하였다.

대표적 기독교 기업인 이랜드의 비정규직 노동자 박대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아프간 피랍 사태를 통해 드러난 한국 교회의 오만함과 무모함에 대하여도 뼈아픈 회개는 하지 않았다. 한국 교회는 여전히 다양한 세속적인 힘을 확보하고 그 힘으로 교회의 영향권을 확대해나가려는 데 여념이 없다. 그러니 아무리 많은 대중적 회개 집회를 연들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진정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날 리 만무하지 않겠는가?

지금은 한국 교회와 목회자의 영향력 회복에 대한 열망을 깨끗이 접어야 할 때이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지적하시는 우리의 구체적인 죄에만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하나님과 맘몬을 동시에 섬기려 했던 거짓된 신앙, 예수님처럼 사랑의 힘없음보다는 세속적 힘으로 전도하고 선교하려 했던 자세, 이웃 사랑의 실천과 따로 노는 죽은 믿음이 얼마나 뼈 속 깊이 우리 안에 박혀 있는가를 발견하고 통곡해야 한다.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야 한다.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어떤 징계라도 달게 받겠다는 심정으로 바짝 엎드려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켜 세우실 때까진 일어나지도 말아야 한다. 국민들이 손가락질 하면 ‘일부의 잘못 가지고 왜 그러냐’고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아선 안 된다. 그냥 ‘잘못 했습니다’고 고백하며 엎드려 사죄해야 한다. 뒤 돌아서며 한없이 울어야 한다. 우리 때문에 주님의 명예가 땅에 떨어졌음을 한탄하며, 아, 나로부터 시작하여 진정한 회개의 역사가 한국 교회에 일어나길 진심으로 바란다.

자기기만에서 벗어나라

둘째, 자기기만에서 벗어나야 한다. 최근 MBC TV ‘뉴스 후’ 프로그램에서 본 장면이다. 소망교회 곽선희 목사는 한 기자가 3억 원을 호가하는 스포츠카인 벤틀리를 타고 다니는 것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자 자기 교회 성도인 벤틀리 자동차 판매 대리점 사장이 선물로 준 것이라고 간단하게 항변한다. 선물로 받은 이상 아무리 호화롭게 살아도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논리이다. 세상적인 의미에선 당연히 선물 받은 것을 누릴 권리가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지 않으셨는가? 그리고 우리에게도 스스로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자신의 발자취를 따라오라 하지 않으셨는가? 성도들의 사랑의 선물이라는 것에 기대어 예수님의 정신과 뜻을 거역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회개해야 한다.

또한 곽 목사는 기자가 교회 내부의 잘못된 결정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자 ‘우리 교회 성도들이 바보가 아니야. 자네들보다 똑똑해’라는 식으로 대답한다. 일견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역시 자기기만의 한 예이다. 아무리 세상적 기준으로 똑똑한 사람일지라도 카리스마 넘치는 목회자 앞에서 얼마나 무지하고 부패한 존재로 전락할 수 있는가를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론 때도 밝혔지만 제임스 루터 애덤스는 액톤 경의 유명한 명제를 뒤집어 ‘무력한 이들(powerlessness)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에드가 Z. 프리덴베르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유약함(weakness)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다. 무기력(impotence)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주장했다.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일지라도 목회자의 카리스마에 눌려 무기력해지면 그 마음이 부패하게 된다. 악을 볼 수 있는 분별력을 상실한다. 무서운 악을 용인하고 변호하면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도덕적 불감증에 빠진다. 한국 교회는 자기기만의 무서운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 하나의 자기기만은 한국 교회의 부패를 인정하고 비판하는 듯 하면서도 실상은 여전히 부패의 길에서 철저히 떠나지 않는 것이다. 조용기 목사는 ‘한국 교회가 귀족화 되었다’, ‘작년 한 해 동안 한국 교회 안에 아무런 회개의 역사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탄한 지 2주간이 지난 주일에 십일조를 열심히 하면 반드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설교를 했다. 그런가 하면 그 설교에서 “예수 믿는 사람은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 예수 믿는 사람은 판자촌에 살아야 한다, 예수 믿는 사람은 거지로 살아야 한다(고 하는데, 이런 말은 모두) 사탄이 하는 거짓말이다”고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리스도인의 자발적 혹은 복음적 가난을 왜곡하면서 사탄의 거짓된 가르침이라는 극단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유하셨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소외시키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가난한 길을 걸어가셨다. 사랑 때문이지 결코 금욕주의적 사고 때문이 아니었다. 그러나 조용기 목사는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사고와 삶 때문에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과 실패한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귀족들의 클럽으로 전락되어 온 것이 아닌가? 성경적 역사관과 사회관에 입각해 볼 때, 주님 앞에서 바르게 산 사람일지라도 세상에서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다. 십일조를 제대로 냈지만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도 수없이 많다. 성경 몇 절만을 문자적으로 강조하면서 그들로 신앙적 혼돈과 자괴감에 빠지게 하는 잔인한 죄를 범해선 안 된다.

세속화 즐기면서 세속화 우려?

셋째, 왜곡된 성(聖) 속(俗) 이원론에 근거한 사제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목회자는 말씀을 잘 가르치고 성도들을 사랑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교회 안에서 지도자로서의 적절한 권위를 지녀야 한다. 그러나 목회자만이 성직자인양 호도하는 사제주의는 큰 잘못이다. 종교개혁의 정신을 다시 뒤집는 것이다. 종교개혁은 우리에게 교회에서 일하는 목회자나 세상에서 일하는 성도나 그 본질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성직자라는 점을 잘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목회자가 세금을 납부하면 다른 근로자와 동등한 존재가 되어 결국 교회가 세속화된다고 우려하는 것은 실로 슬픈 일이다. 이는 시계를 거꾸로 돌려 종교개혁 이전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말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진정으로 걱정해야 할 세속화는 다른 데 있다. 목회자들이 성직자임을 빙자하여 물질적 풍요와 각종 권력을 누리고 싶어 하는 욕망에 빠져드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 욕망을 충족시키려면 많은 성도들과 그들의 헌금이 필요하니,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값싼 은혜와 기복신앙으로 둔갑시켜 사람들을 교회로 유인하는 것이 무서운 세속화의 핵심이다. 그런 세속화는 오히려 즐기고 있으면서 목회자 세금 납부로 말미암은 세속화를 우려하고 있으니 참으로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비판을 넘어서

마지막으로 교회 개혁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현재 교회 부패상에 대한 비판에만 머물지 않고 스스로 자신과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나가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는 교회 개혁 저항 세력이 흔히 내세우는 소위 비판 무용론을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비판운동은 비판운동대로 치열하게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건물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것을 부수는 것보다 좋은 것을 세우는 일이 훨씬 힘들고 오래 걸린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적극적으로 건강한 자아와 교회를 세워나가야 한다. 그래야 교회개혁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이 자기 의와 교만에 빠져 스스로 망가지지 않고 은혜롭게 성장해갈 수 있다.

이는 성령 충만을 요한다. 교회에 대한 예리한 비판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야말로 성령 충만을 뜨겁게 사모해야 한다. 성령이 바람처럼 불처럼 임하는 것을 공동체적으로 경험해야 한다. 성령 충만한 교회 개혁의 일꾼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들을 통해 치료책이 없는 상황으로 치닫던 한국 교회가 새롭게 일어서게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박득훈 / 한국 언덕교회 담임목사·한국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

* 이 글은 LA기윤실 소식지에 실린 것입니다. (LA기윤실 홈페이지
www.cemkla.org)

 

 

 

이런 기독교라면 교회 다니겠다

 언덕교회 홈페이지가 2월 1일 새벽부터 며칠 동안 갑자기 몰려든 방문자들로 인해 서버가 다운되었다가 복구되었다가를 반복했다. 많은 네티즌들이 MBC ‘100분토론’ 시청 소감을 올려놓았다. 극소수가 박득훈 목사의 내용을 비판했으나, 대다수는 찬성하는 글을 올렸다. 무엇보다 불교 신자, 가톨릭 신자, 종교를 안 가진 사람, 예수를 믿다가 교회를 떠난 사람 들의 글이 무척 많아서 눈길을 잡아맨다

이들의 글들 중 일부를 모았다. (편집자 주)

“저를 다시 믿음의 길로 발길을 돌아서게 하신 목사님. 다시 한번 희망을 가지고 교회를 가겠습니다. OO교회라면, 한번 저의 믿음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00분토론 때 목사님의 모습을 통해서 어렸을 적 아주 가끔 느꼈던 예수님의 모습을 느꼈습니다. 이제는 정말 다시 교회에 나갈 수 있는 힘을 얻은 것 같습니다. 목사님은 단순히 토론자로 참석하신 것이었지만, 그 토론으로 인해서 많은 불신자와 저와 비슷한 교회의 타락과 물질만능주의에 실망해서 떠난 사람들을 감동시켜 주신 것 같습니다.”

“100분토론을 녹화해서 보고 또 보았습니다. 아무리 봐도 지나침이 없었습니다. 목사님의 말씀 하나 하나가 제 가슴에 또렷이 새겨지더군요. 마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돌판에 새기듯이 말이죠. 그리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더군요, 감사함과 기쁨의 눈물이. 목사님을 통해 점점 희미해져가던 제 속의 신앙이 다시 타오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사랑이 다시 불이 붙었습니다.”

“저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개신교 신자는 아니지만, 목사님의 토론을 보고 현재 개신교계의 문제점과 방향에 대해 상당히 공감했습니다. 토론을 보면서 감동해보기는 처음입니다. 바른 정의와 반대로 움직이는 개신교의 치부를 숨기지 않고 솔직하고 명쾌하게 지적해주셨지요. 감사드립니다. 반성이 없다면 발전은 없는 것이겠지요. 목사님과 같은 분이 많다면 개신교계의 자정은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는 천주교 신자로서, 자주 사제들을 위한 기도를 합니다. 목사님을 위해 조금만 표현을 바꿔 기도드립니다. ‘영원한 사제이신 예수님, 주님을 본받으려는 목회자들을 지켜주시어 어느 누구도 그들을 해치지 못하게 하소서. 주님의 뜨거운 사랑으로 목회자들을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지켜주소서. 목회자들이 하는 모든 일에 강복하시어 은총의 풍부한 열매를 맺게 하시고, 저희로 말미암아 세상에서는 그들이 더없는 기쁨과 위안을 얻고, 천국에서는 찬란히 빛나는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토론을 통해 목사님을 알게 되면서 믿음을 가지고 싶어졌습니다. 이전에는 그저 기독교가 나빠 보이고 신뢰가 안 갔는데, 목사님 말씀을 들으면서 기독교 원래의 모습이 진정으로 느껴졌습니다. 정말 훌륭한 전도입니다.”

“100분토론 보고 목사님을 알게 되어 궁금함에 여기까지 찾아온 불교 신자입니다. 전 한때 열렬한 불교 신자였지만, 절과 스님들의 타락을 보며 오로지 내 마음속에서만 종교를 찾고자 노력하는 불교 신자입니다. 우연히 100분토론을 보고 목사님의 말씀에 많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더군요. 목사님의 말씀에 기독교와 불교를 떠나 모든 대한민국의 종교가 제정신을 차렸으면 좋겠습니다. 목사님 같은 분들이 많이 나와서 우리 국민들이 정말 의지할 수 있는 마음의 종교가 되어주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저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친구들 따라 교회는 몇 번 왔다 갔다 한 적은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대한 의견 차이로 오히려 갈등만 키워 관계가 소원해진 친구도 있으니, 교회에 대한 추억은 주로 씁쓸한 것뿐입니다. 그러나 TV에서 목사님의 여러 말씀을 듣고 참 감동 받았습니다. 집단 이기주의가 만연한 기독교의 절대 부패 권력에 대한 가슴 아픈 비판을 정말 용기 있게 하셨습니다. 저는 인간의 근원적 외로움 땜에 가끔 서투른 제 방식의 기도를 하지만, 남을 위해선 거의 해 본 적이 없기에, 목사님을 위해 기도를 드리면 하나님도 무척 기특해서 꼭 들어주실 것 같아요.”

“모태신앙이지만 부패한 교회와 그들의 가식과 위선에 염증을 느끼고 교회를 멀리하게 되었는데, 그래도 아직 우리나라 기독교에 목사님 같은 분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무개념 파렴치 목사들이 판을 치는 가운데 한줄기 빛을 보는 것 같아 그래도 아직은 한국 교회가 완전히 망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목사님처럼 깨어 있는 종교인들이 제발 제발 좀 많아졌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저는 타종교인입니다. TV토론에서 보여준 목사님의 올곧은 사상과 발언에 많은 공감을 느끼며, 아울러 개신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공감하고 있는 바를 대변해주심에, 개신교 내에서 목사님과 같은 분들이 계셔서 보는 내내 갈증을 해결해 주는 느낌이었습니다. 미약하나마 타종교인이지만 목사님의 일거수일투족에 강한 신뢰와 지지를 보냅니다. 처음으로 개신교에 대해서 호감을 느끼게 해 주신 것 같습니다.

“전 가톨릭 신자입니다. 목사님,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열정과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록 믿음의 방법은 다르지만, 목사님이 있기에 개신교 형제들에게도 희망을 봅니다.”

“전 30년이 넘게 교회를 다니다가 많은 회의감으로 인해 지금은 다니고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매번 목사님에게 시험받고 성도에게 시험받고, 대형교회 목사님과 유명한 목사님들의 부적절한 모습으로 인한 시험들이 회의감에 빠져, 교회를 한두 번씩 멀리하게 되더니 이젠 다니지 않은 지 5년 가까이 되는군요. 그런 와중에 100분토론이 다뤄졌지요. 목사님을 보고 감동 받았습니다. 정말 저런 분이 한국 교회에 많이 계신다면 우리 한국 개신교도 다시금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들더군요. 교회 내부에서 먼저 뼈를 깎는 아픔으로 반성과 회개를 통해 먼저 개혁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니 결국 이렇게 외부적인 충격을 가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합니다.”

“100분토론에서 목사님을 보고 믿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존경의 마음을 보이더군요. 제가 자주 가는 인터넷 카페들에서도 평소에 한국 교회를 손가락질하던 사람들도 목사님을 보고 감동 받으며 ‘저런 분이 계신 교회는 나도 다니고 싶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이곳저곳에서 ‘저런 목사님이라면’이라며 희망을 말하고 비기독교인들조차 마음을 움직이게 할 정도로 감동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것도 또 다른 복음이 아닐까요? 길거리 다니면서 ‘예수 믿으세요’라고 하는 것보다 하나의 설교보다 진정한 회개와 반성을 하며 뼈를 깎는 자성을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더 큰 힘과 위력을 보일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싶네요. 목사님 같은 분들을 보고 마음이 움직이기도 하고 저같이 교회를 한동안 멀리 하게 된 사람까지도 당장 이번 주부터 교회를 다시 나가 볼까 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지요. 비기독교인들이 마냥 악감정으로 교회를 욕하는 게 아닙니다. 교회가 잘못되었다 생각이 드니 그러는 겁니다. 우리가 진정 회개하고 자성하고 변하는 모습을 보일 때 저들도 한국 개신교와 교회를 통해 예수님을 알게 되고 그 속에서 찾아오게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100분토론에서 목사님을 보고 감동을 받아서 다시금 교회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당장 이번 주부터 가까운 개척교회에 나가야겠네요.”

“저는 무교입니다. 사실 종교 내 문제는 그 안에서 풀어야 하겠지만, 교회 내 문제가 너무 커져 일부 대형 교회의 행실이 사회의 병적인 존재가 되어가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아무리 비기독교인들이 잘못을 꼬집어줘도 스스로 자성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그저 안티의 실없는 말로 무시하는 악순환만 반복될 뿐이겠죠. 100분토론을 보고 교회의 진정한 자정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이런 목사님도 계시는구나’ 생각했죠. 정말 이런 목사님들이 많이 생겨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랜만에 사람다운 사람을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상식적인 종교인을 만났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찾아뵙고 배우고 싶은 분을 만났습니다. 선교나 포교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종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대로 된 선교와 포교란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바로 생각하고 옳게 행동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우리 교회, 우리 절에 나오라 용쓰지 않아도 사람들은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어제의 토론을 보고 사람들은 어디를 또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어제의 토론을 보고 기독교에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면, 어느 편의 이야기를 듣고였겠습니까? 저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지만, 어제 목사님의 출연은 엄청난 전도를 하셨음이 분명합니다. 돈으로 메워 올린 언덕 위에 돈다발로 대형교회를 지어 올리는 목사님들 넘쳐나는 시대에, 저는 개신교인이 아니지만 이런 분이라면 종교 불문하고 존경하고 가까이 할만 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비기독교인입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따라서 절에는 한두 번 가본 게 전부이고, 교회에는 두세 번인가 가보았습니다, 결혼식 때만. 대학은 학교가 가톨릭이라 많은 신부님들은 봤습니다. 사실 전 기독교인들이 싫습니다. 대부분 남과 자기들을 선을 그어서 이분법적으로 사고하고 어울리지 않으려고 해서 싫습니다. 친했던 대학 과 동기도 저에게 전도를 하려고 열심히 친하게 다가오다가 제가 난색을 표하니 바로 멀어지더군요. 그래서 저는 기독교인들이 싫습니다. 근데 어제 목사님을 보니까 ‘와, 이런 분도 계시구나’ 하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기회가 되면 30 평생 교회를 안 가려 했고 가기 꺼려했는데 한번 가보고 싶어지네요.”

“저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이제껏 가톨릭은 썩은 물이고 개신교가 거듭난 정통 그리스도교임을 주장하며 ‘구원이 없는 가톨릭’이 아닌 ‘개신교’로 오라는 터무니없는 강요도 무수히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앵무새처럼 읊조리는 이야기 속에 '하느님/하나님의 뜻'은 보이지 않았고, 신자 한 명 더 빼내려 '새로운 논리'를 끊임없이 창조해내는 거짓 선지자들의 영교한 음모만 보였습니다. 저는 신학을 깊이 공부한 사람이 아니어서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목사님께서 ‘만인제사장’에 대해 말씀하시는 걸 듣고 가슴이 후련해지고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꼈습니다.”

“전 교회를 다니지 않지만 오늘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노라니, 아, 우리 한국의 교회는 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고 정말 좋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말씀을 당당하게 전하라고 하시는 것과 같이 교회에 대한 당당하게 투명함을 말씀하시는 것에 그저 감동할 따름이었고, 한 말씀 한 말씀이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별로 없을 줄 알았습니다. 저는 난생 처음 100분토론 게시판에 글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찾아왔습니다. 혹시나 저 같은 사람의 응원 목소리가 목사님께 전달되지 않을까봐요. 그런데 저 말고도 굉장히 많으신 분들이 찾아왔네요. 목사님 하시는 일 힘드시겠지만 희망을 잃지 마시고 열심히 해주세요. 저는 하나님을 잘 모르고 솔직히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나신교라서요), 항상 종교인들만이라도 올바른 생각을 하고 올바른 행동을 한다면 그래서 사회에 귀감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항상 따라다녔는데, 목사님을 보니깐 제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처럼 시원하네요. 그리고 대중매체에 더 많이 나오셔서 더 좋은 말씀 많이 해주세요. 저 같이 교회에 오랫동안 부정적인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변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교인이 아닌 사람이지만 목사님이 원하시는 개혁을 꼭 이루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고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저는 안티크리스천입니다. 개신교의 부도덕함과 비논리를 개신교신자들에게 알리고 싶었지만 일개의 힘없는 일반인의 말은 안티라는 단어로 정의되어 버렸습니다. 목사님의 깨어 있는 사고는 정말 감동적이었으며, 수많은 안티, 아니 수많은 일반 국민들이 개신교에 호의적으로 글을 쓰는 이곳 게시판은 난생 처음 보는 진귀한 광경이라는 표현까지 하고 싶습니다. 목사님 같은 분이 계신다면 우리나라에 절대 안티크리스천은 없어질 거라고 굳게 믿습니다.”

“전 한때 교회를 다니다가 교회가 뭐랄까, ‘예수 천국 불신 지옥’만을 너무 강요하고, 갈 때마다 제가 앉은 앞을 항상 지나가는 헌금 주머니도 싫고, 그래서 다니지 않은 지 몇 년 됐네요. 우리나라에 반기독교 감정이 많다는 것을 목사님도 아실 겁니다. 저 또한 이런저런 이유로 기독교를 정말 싫어했는데, 목사님께서 100분토론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서 ‘정말 우리나라에 이런 목사님이 계시는구나’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저는 성당에 다니는데요, 100분토론을 보면서 개신교에 대한 오해를 조금은 덜었습니다. 저희 고모님이 목사님이시라 안타까운 바가 컸습니다. 저희 고모님은 참 검소하시고, 현재 맹인들을 돌보시고 계시며, 손수 밥, 빨래, 청소 다하시면서 희생하시거든요. 그래서 모든 목회자 분들이 다 나쁘진 않을 텐데 하면서 안타까웠습니다. 목사님을 보니 스스로 반성할 줄 아는 목회자야말로 참된 목회자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마도 제가 무교였다면 이 교회를 다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오늘 저희 엄마가 하신 말씀 중에 “양심의 소리가 주님께서 들려주시는 가장 큰 음성이다”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목사님의 짧은 말씀이 지금까지 35년간 신앙을 부정하며 살아온 제 자신을 부끄럽게 만드시는군요. 믿음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00분토론 보고 왔습니다. 목사님께서 조리 있게 해 나간 말씀을 듣고 한국 교회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저는 비록 무교지만 언젠가 연이 닿아서 '교회'라는 곳에 가게 된다면, 어느 교회에 찾아갈지 고민할 것도 없이 모든 곳에 목사님과 같은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많이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30년 교회를 다녔지만 교회를 다니면서 회의적인 부분이 없지 않았는데, 목사님을 보면서 희망이 생긴 느낌입니다.”

“저는 불교 신자입니다만 이런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과 연결되는 교인들이 참 부럽군요. 저 역시 비리를 저지르는 승려의 탈을 쓴 인간들이 부끄럽고 또 죄스럽지만, 목회자로서 목사님은 더 큰 짐을 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더욱 힘내시고 더욱 많은 사람들을 천국으로 이끌어 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절에 다니고 있고 현재도 불교에 몸을 담고 있습니다. 제 주변에 정말 거의 모두가 개신교 교인입니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교인은 같은 교인끼리만 모든 걸 나누는 걸 많이 봐 왔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시지만 교인 외에 분들에게는 너무 인색한 면을 많이 봐 와서 저는 솔직히 정말 교인에게 실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타종교를 믿고 있는 제 가슴에도 감동이 솟아오르네요. 그저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그리고 남을 한번 돌아봐줄 수 있는 그런 마음 그런 믿음이 있으면, 불교인이든 교인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지난 주 ‘뉴스후’를 보며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창피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토론을 보며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한국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아무 말 할 수 없어야 할 사람들이 다시 말하는 것을 보며 안타까웠구요. 하지만 희망이 있습니다. 목사님의 말씀과 역설적으로 희망이 있습니다. 한 분 두 분 그렇게 깨어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사용하실지 기대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정말 간절함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부터 하나님 앞에 온전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부터 노력하겠습니다.”

“100분토론을 보고 감명 받은 한 사람입니다. 저는 참고로 기독교인이 아니고 무교인입니다.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기독교에 이렇게 깨어 있는 목사님이 계신 것이 대단한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님 같은 분이 기독교에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기독교인은 아닌데요. 이런 글 여기에 올려도 될지 모르지만 100분토론을 통해 목사님을 뵙고 여기까지 찾아왔습니다. 정말 우리나라에 목사님 같은 분들이 여러분 계신다면 꼭 교회에 나가서 주옥같은 말씀 들으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천주교인입니다만, 목사님 같은 분이 현재 한국 기독교의 희망입니다. 힘드시겠지만 한국 기독교 발전에 큰 도움을 주십시오.”

“저는 종교가 없는 사람으로서, 일부 개신교인들의 선민의식, 믿음의 강요, 이중적 행태, 부패 등을 보고 부정적 인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물론 안 그런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요. 이번 100분토론을 보고, 박 목사님과 같은 분들도 있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앞으로 종교개혁운동 열심히 전개해나가시길 바랍니다. 목사님의 토론을 보면서 '아, 나도 한번쯤 OO교회에 가서 목사님 말씀을 한번 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공공장소에서 휴지 나눠주면서 확성기로 믿음을 강요하는 행위에서 느꼈던 불쾌감과 절망감을 떨쳐버릴 수 있어 너무 좋았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다니다 최근 몇 년간 교회를 나가지 않는 사람입니다. 교회 자체에 회의가 들어서 한때는 예수님의 희생에 눈물을 흘린 그런 믿음을 가진 성도였지만, 지금은 무신론자라고 스스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100분토론은 이런 저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교회 내부에 대한 비판을 스스럼없이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교회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데, 이런 속담이 무색할 정도로 내부 문제에 대해 따끔하게 지적하고 반성하시는 모습은 비단 교회에 대한 저의 시선을 바꾸는 것을 넘어, 제 인생에 있어서도 큰 귀감이 될 것입니다. 초심을 잃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저는 교인이 아닙니다. 새벽에 지하철에서 노인분들이 교회 약도가 적힌 휴지를 나눠주는 걸 볼 때마다, 물론 그분들은 스스로 하셨겠지만, 왜 저런 노인분들이 새벽부터 교회 나오라고 예수 믿으라고 하면서 저런 걸 돌려야 하나, 저런 식으로 노인들이 먼지 먹어가면서 전도해야 하나, 항상 비판적으로 바라본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교인들은 아무리 잘못된 것을 말해도 절대 듣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 말씀을 듣고 제가 모든 교인들을 비판한 게 부끄럽네요. 기회가 되면 목사님 말씀 듣고 싶네요. 한국 교회가 이 땅에서 좋은 일 많이 하고 긍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앞으로도 노력해주세요. 한국 교회에 희망을 보았습니다.”

“대대로 모태신앙이었고 가족에도 목사님이 있지만, 교회에 너무 실망을 해서 떠났던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한국 교회를 떠났지 하나님을 떠난 건 아니라 위로하고 살고 있었지요. 교회가 상처받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가슴이 아프지만 점점 더 보기조차 괴로워지는 모습에 너무 슬펐습니다. 100분토론 보면서 목사님 말씀 듣다가 울었습니다. 왜 이런 말씀을 제가 다닌 교회 목사님들은 안 해 주셨을까요. 누구보다 제단 아래서 듣고 있는 우린 다 알고 있는데, 왜 목사님들은 그렇게 주일날 제단 위에서만 거룩하셨을까요. 어떤 뜨거운 설교보다 더 큰 감동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한국 교회에 희망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토론 보고 목사님한테 감동받아서 글 남깁니다. 목사님에게서 대한민국 교회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종교가 없는 저지만 목사님이 설교를 하신다면 한번 들으러 가봐야겠어요

 

 


 


    소마트리오 연주
    violin손인경 cello배일환 piano이민정